
몽펠리에 개선문(Arc de Triomphe du Peyrou)
몽펠리에 시를 관광하는 사람들은 몽펠리에라는 작은 도시에도 어떻게 이런 개선문이 있는지 놀라곤 합니다.
페이후(Peyrou) 광장 입구에 세워져 있는 몽펠리에 개선문은 1691년 착공하여 1693년 완공되었으며,
세운 목적은 프랑스 왕 루이 14세(Louis XIV)의 권위와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로마식 개선문을 본뜬 것으로 왕의 권위와 위대함을 선전하기 위한 기념물 입니다.
많은 관광객들은 이 정도를 아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해 합니다.
그러나 이 개선문에는 더 깊은 의미의 숨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 겉으로 보면 “왕의 영광”을 기리는 건축물이지만, 프랑스 개신교인(위그노)의 눈으로 보면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개신교의 상징인 위그노의 입장에서 보면, “이 개선문은 위그노 박해의 상징입니다”
몽펠리에 개선문은 종교적 관용의 승리가 아니라, 개신교를 굴복시킨 왕권의 승리 선언의 상징물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몽펠리에는 위그노의 도시였습니다.
위그노란 종교개혁 이후 프랑스의 종교개혁자 꺌방(Jean Calvin)의 가르침을 따라 신앙을 지킨
16–17세기 프랑스의 개혁파(칼뱅주의) 개신교도들을 말합니다.
이 때, 몽펠리에는 프랑스 남부의 대표적인 개신교 도시로서,
신학생, 설교가들을 배출하는 신학교가 있었고,
다수의 개신교 지식인, 상인, 의사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위그노 전쟁 당시에도 강력한 개신교 거점이었던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낭트칙령(1598)이 앙리 4세에 의하여 선포되자 개신교인들은 신앙의 자유를 보장 받았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몽펠리에의 위그노들도 비교적 평안한 시기를 보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뒤집히는 사건이 1685년에 발생합니다. 프랑스 왕 루이 14세가 낭트칙령을 폐지한 것입니다.
오랜 종교 전쟁 끝에 개신교(위그노)의 세력이 급격하게 감소했다는 판단 하에,
“이제는 개신교 인들이 더 이상 없으니 그런 법은 필요 없어!”
라고 선포해 버린 것입니다.
이제는 개신교인들의 예배는 금지되었고, 교회들은 파괴되었으며, 강제적인 개종이 시작되었습니다.
목사들은 해외로 추방되고, 교인들은 감옥에 갇히거나 고된 노역(걀리선 노젖기 등), 유배 등의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 박해가 막 끝난 직후, 왕은 이 도시 몽펠리에에 개선문을 세웁니다.
개선문에 새겨진 상징들을 설명드리면,
정면 조각과 문구는 루이 14세를 로마 황제처럼 묘사합니다.
이 문구에 루이 14세 왕은 “질서와 통일을 회복한 위대한 존재”로 표현됩니다.
그러나 이 질서란, “개신교를 제거한 질서”였습니다.
개선문 너머에 페이루 공원에는, 그 중앙에 말을 탄 루이 14세 왕의 거대한 동상이 있습니다.
동상의 위치를 시내의 건물과 성당들보다도 높은 곳에 위치 시킴으로써,
신앙의 자유보다 왕의 (종교) 통일 의지가 더 우선 되는 것을 드러내며,
결국 왕권을 강조하여, 자신을 교회 위에 존재하는 위대한 인물로 묘사합니다.
그래서 위그노에게 이 장면은: “우리를 침묵시킨 권력의 맨 얼굴”이었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개선문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문이 아니라,
개신교 신앙을 억압한 인간 권력의 승리를 선언한 문입니다.”
👉 이 탭은 몽펠리에와 주변 지역의 신앙 유적지들을 발굴하여 연재하는 란으로 사용할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