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펠리에의 미카브 감옥을 아시나요?

몽펠리에 시내의 옵세르바또아(Observatoire)역에서 내리면 바로 옆에 커다란 성벽처럼 보이는 석회석 건축물이 있습니다.
건물이라고 하기 보다는 큰 성벽의 일부처럼 보이고, 거기에 항상 프랑스 국기가 휘날립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장소는 바로 이 곳입니다.

미카브 감옥(La prison de la Tour de la Babote 인근)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몽펠리에 개신교 역사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카브 감옥은 정식 명칭이라기보다는 바보트 탑(Tour de la Babote) 인근 지하 공간과 감금 시설을 통칭하는 개념입니다.

이 곳은 16–18세기, 프랑스의 개신교인들(위그노)이 수용되었던 감옥이었습니다.
죄목은 개신교인들의 ‘예배에 참석했다’, ‘성경을 가지고 있었다’, ‘가정 예배를 인도하였다’, ‘목사님을 숨겨 주었다’, ‘개신교 신앙고백을 하였다’는 것들이었습니다.
즉, 범죄자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갇힌 곳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어처구니 없는 내용들이었습니다.

Mikvé(미크베)란 유대교의 정결 예식용 의식을 하는 목욕탕 처럼 생긴 지하 공간입니다.
중세 몽펠리에에는 유대인 공동체가 정결 예식에 사용하던 곳이고,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 근처에 있는 감옥이었기 때문입니다.
(경시청에서 뻬이후 공원 쪽으로 가는 길의 샛길에 위치해 있습니다.)
Mikvé Médiéval – Ancienne Synagogue médiévale,
1 Rue de la Barralerie, 34000 Montpellier 지도 보기

바보트 탑은 원래 도시 방어용 망루로 사용하기 위하여 건설되었습니다.
그 이후, 이 탑은 심문, 임시 구금, 신앙 포기 강요를 위한 장소로 사용되었고,
개신교인들은 이곳에서 개신교의 개혁 신앙을 포기하고 다시 구교(가톨릭) 신앙으로 되돌아 갈 것을 강요받았습니다.

“가톨릭으로 개종할 것인가, 감옥·유배·죽음을 택할 것인가”

감옥 안은 거의 빛이 들어오지 않는 캄캄하고 습기가 가득한 지하 골방이었습니다.
당연히 위생적으로 최악이었고, 장기 구금을 당하는 것은 아주 흔한 일로서, 고문과 협박이 극심하였습니다.
특히 많이 갇힌 사람들은 평신도 설교자, 가정예배 인도자, 개신교 여성들이었습니다.
개신교 여성들은 자녀에게 신앙 교육을 하였다는 이유로 투옥되었습니다.
여성들은 종종 수녀원 감금되거나 아이와 강제 분리를 당해야 했습니다.

미카브 감옥은 처형장이 아니라 ‘선별소’였습니다.
이곳에서 감옥에 가게 되면, 그 감옥에서 유배지로 가거나, 노예선(가레선)에 태워져 강제로 노를 젓거나, 처형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조금 나은 경우는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 등으로 망명을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소설 몽테크리스토백작에 나오는 이프섬도 개신교인 유배지로 사용되었던 장소입니다.
마르세이유에 가시면 지금도 배를 타고 이프섬에 가 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눈에 띄는 십자가는 없지만 순교지라고 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던 곳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라는 말씀을 잘 아시지요?
이런 박해가 심한 감옥 속에도 교회는 존재했습니다.
건물로서의 예배당이 있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배당도 없고 성경책도 없고, 찬송가도 없었지만 그들이 예배하는그 자리가 바로 예배당이었습니다.

성경은 불법 문서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말씀을 외우고 있었고, 늘 외우던 그 성경 말씀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어떤 회유와 협박에도 말씀 중심의 신앙을 견고히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교회도 이와 유사한 경험이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그리스도인들은 자유롭게 예배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교회가 불탔고, 수많은 교인들이 박해와 협박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몰래 숨어서 예배하고 믿음을 지키는 “지하교회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가정에서 모여 드리는 가정 예배도 늘 감시를 피하여 드려야 했던 시절이 있었던 한국 교회 그리스도 인들은 그 분위기를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곳은 범죄자가 아니라, 말씀을 읽고 기도했다는 이유로 갇힌 사람들이 있던 자리입니다.
몽펠리에의 개신교 역사는 화려한 예배당이 아니라, 이런 어두운 공간에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프랑스는 종교와 정치 분리 문제에 대하여 매우 민감한 나라입니다. 과거의 피비린내 나는 종교 전쟁을 오래 겪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프랑스 혁명 이후부터 종교 갈등을 드러내는 표식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어 왔습니다.
종교적인 것 보다는 관광 도시적인 이미지를 우선적으로 부각시키다 보니, 개신교 역사는 그저 ‘조용한 한 시대의 역사’로 남겨진 것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개신교인에게는 많은 교훈과 도전을 전해 주는 장소입니다.
지금도 이 탑은 우리의 신앙 생활에 강력한 도전을 던지며 무언의 설교를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탭은 몽펠리에와 주변 지역의 신앙 유적지들을 발굴하여 연재하는 란으로 사용할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